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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이 용접을 알아?

설무빈 부장

by HugoDev 2024. 4. 19.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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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설무빈 부장 인사드립니다.

 

뒤늦게 참여하게 되었는데, 첫 글 주제로 용접이야기를 쓸 줄은 몰랐는데요.

 

공사현장 일을 일년도 하지 않은 응애로서, 이런 글을 쓰는게 상당히 민망합니다. 그러나 제목은 제가 정한게 아니기에...

아무쪼록 제가 단기간 내에 겪은 이야기니, 굉장히 야매스럽고, 사실은 틀린게 많을겁니다.(반박시 님말이 옳아요.)

 

미숙한 글 잘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1. 용접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16년 여름 전역 후, 가을학기 한학기 다니고 겨울이 되었습니다. 질풍노도의 25살(만 23살)의 나이였을지라, 궁금한 것도, 하고싶은것도 많았습니다. 불타는 젊은 나이 + 전역버프까지 있던 저는 당시 하던 여러 고민들을 쭉 정리해봤습니다. (사실 P라서 정리까진 안함)



특히 저를 휘어잡던 고민 키워드는 노동이었습니다.

 

1-1) 노동

낫과 망치, 정말 (검열된 키워드입니다)!

노동, 한창 러시아 문학에 빠진 노문과 학생이라면 무릇 좋아할만한 키워드지요. 이미 전 그때도 낭만깨나 추구하던 인간이었거든요. 

특히나 육체노동은 제게 엄청 달달한 꿀통으로 보였습니다. 당시 정말 좋아하던 책에서, 정말 좋아하던 캐릭터가 육체노동의 가치를 간접적으로 보여줬거든요. 

대충 안나 카레니나(톨스토이 저)에서 레빈이라는 캐릭터가 농촌에서 풀베는 장면

 

 

 

(정말 대충 설명하자면 제가 좋아하던 캐릭터는 이런 느낌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의 저는 레빈이란 캐릭터와 저를 어느정도 동일시한것 같습니다. 

 

 

1-2) 돈

물론 노동이 전부는 아니죠. 보통의 대학생은 돈이 없고, 저는 돈을 벌고 싶었습니다. 당시 몇몇 알바, 과외(나중엔 학원강사로 이어짐) 통해 생활을 이어나갔는데요. 그러다 유학준비(궁금하신 분들이 있다면 나중에 따로 정리하겠습니다)를 위해서 목돈이 좀 필요했습니다.

 

평소와 같은 사고방식이라면, 휴학을 하고 과외를 늘리거나 강사를 하는 선에서 멈췄겠지요. 그러나 아주 운이 좋게도, 혹 조금은 불운하게도 저는 1-1)노동의 이유로 생산적 육체노동이 하고싶었고, 그렇게 공사현장의 일에 뛰어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2. 배관조공으로 시작하기. 공사현장 이모저모. 

 

2016년 12월 25일. 모두가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기던 때였는데요. 마침 마지막 기말고사 시험이 끝났습니다. 막 현장일을 알아보던 중이었지요. 다음 학기는 휴학이다! 마음을 먹었읍죠.

 

중학교 친구 중 용접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지금 헬스 트레이너를 하고 있는데요. 마침 그 시기에 용접을 하고있던게 생각해보면 신기합니다.) 그 친구를 통해 배관조공 일을 구하게 됩니다. 우하하 운도 좋아라.

 

 

2-1) 배관조공을 무엇을 하나요?

아무것도 모르던 저는 배관 조공으로 시작했습니다. 대충 이런일을 했습죠.

꼭 꼭 필요하지만, 조금은 자질구레한 일입니다.

 

문명인으로 살다보면 배관이라고 하는 친구는 항상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주로 기체나 액체를 용이하게 전달하는데 쓰이는게 바로 배관인데요.

 

빌라의 외벽에 있는 우수배관(대충 빗물빼는 배관), 온수관, 냉수관,, 에어컨 등등... 세상천지가 곧 배관입니다. 

 

그리고 당연한 사실이지만, 이런 배관들은 코너를 돕니다. 커브를 45도정도로, 60도정도로, 당시의 제게는 지 멋대로 이어져있었습니다.(사실 제겐 당연하지 않았습니다)

 

구불구불구불...

꾸불꾸불꾸불꾸불꾸불꾸불꾸불꾸불꾸불꾸불꾸불꾸불꾸불꾸불꾸불꾸불

 

구불구불한 배관들은 이 두가지 조합으로 완성이 됩니다.  저 엘보랑, 저 동일한 규격의 파이프의 조합이었습죠. 그리고 저 두 친구를 이어주는게 바로 용접사가 하는 일이지요.

 

이 용접을 하기 직전의 상태를 만들어놓고, 준비하는게 제 일이었습니다.

 

그거슨 바로 1)재단한 만큼 배관을 자르고, 2)서로 맞대어놓은상태로 대기시키는 것... 3)천장이라면 천장에, 벽이라면 벽에 말입죠.

랜탈카와 스카이

 

특히 3)과 관련해서 위아래로 스프링처럼 띠용 올라가던(당연히 천천히 올라가고 내려감) 랜탈카와 스카이를 종종 탔는데요. 렌탈카 모는 맛이 아주 재밌었습니다. 운전면허도 없는 제게 허락된 유일한 마약드라이브이었어요.

 

현장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하던 렌탈카 운전시험에도 한번에 통과한 사람이었습니다. 휴하하.

 

디테일을 파고들어가면 하는건 많지만, 주절주절 길게 쓴 것 같이 2-1은 마무리하겠습니다.

 

 

 

2-2) 배관공의 생활상. 숙과 식.

사실 공사현장일은, 대부분 외부 숙식생활을 전제로 합니다.

아무래도 제가 들어갈 현장이 집 근처에 있으면 베스트겠지만, 나를 필요로 하는 현장이 집 바로 옆에 있길 바라는건 어렵겠죠?

 

숙(宿).

 

제가 일했던 현장은 세 곳인데요.

1)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 배관 보수

2) LG 마곡 사이언스 파크 건설 (신기하게도 로니가 일하는 건물동이, 제가 작업 했던 곳입니다. 이 건물 내가 다 지은겨~ 으이)

3) 삼성 고덕 반도체공장(팹동) 건설

 

모두 팀에서 잡아준 모텔이나 빌라에서 생활했습니다. 

1번과 2번의 경우 8명 정도 되는 팀원들이 한 빌라에서 지냈고, 3번의 경우 근처 까치산역 즘에 있는 모텔방에서 지냈습니다. 이때쯤 저는 고등학교 친구를 꼬셔서 둘이서 한방을 썼는데요. 친구는 침대에서, 저는 바닥에서 잤어요. (모텔치고 작아서 거의 고시원크기의 방이었습니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고 금방 잘 적응했습니다. 어차피 숙소는 잠만 자는 곳이기도 했구요.

 

 

식(食).

 

공사현장의 꽃은 역시 함바집이죠.

이름 모를 유튜버분. 죄송합니다...

업체가 근처 함바집과 계약을 맺어서 제 이름을 적고 먹는 형식이었습니다.

 

아마 한끼에 5,000-6,000원정도 였을거에요. 근데 정말 맛이 좋습니다. 밥, 반찬도 알아서 퍼가는 식이고, 정말 살면서 그렇게 많이먹어본건 군대 훈련병 시절 이후로 처음이었습니다. 지금 물가 생각해보면 상상도 못할 가격에, 상상도 못할 퀄리티였네요.

 

 

2-2) 배관공의 생활상. 노동구조과 노동의 가치(aka. 돈.)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인부는 일용직 노동자입니다.

 

일단위로 일을 하고, 돈을 받는 구조입죠.

 

하루치 일(오전 7시 ~ 오후 5시) = 1 공수

 

오전 7시에서 시작해서 오후 5시까지 일하는 것이 1공수였습니다.

아침 7시마다 모여서 하던 OT, 대충 건강체조 하고 해당 구호를 외치고 투입한다. 짤은 어디서 주워옴

 

배관조공의 일당은 당시 12만원이었습니다. 실제로 원청에서 나한테 12만원을 주냐? 그건 아닙니다. 훨씬 더 많이 줍니다. 하지만 설명하기 귀찮으니, 그냥 이것저것 차 떼고 포떼고 제게 들어오는 돈이 12만원이라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한달에 30일을 꾸준히 나가면

12만원*30공수  = 360,

 

이런식으로 하는만큼, 공수만큼 받는 것이었지요. 요즘은 단가가 많이 올랐다고 하는데, 정확히 얼만진 모르겠네요.

 

저는 주로 한달에 주말 하루 쉬었습니다. 

당시 현장 인력시장은 꽤나 호황이었어서 바쁜현장은 많고, 사람도 많이 필요했거든요.

 

그리고 이부분이 ★포인트★인데, 연장, 야간, 철야 개념이 있습니다.

 

연장은 당시 5시 퇴근시간 기준 2시간을 더 일하는 것 (+0.5공수)

야간은 5시 퇴근시간 기준 4시간을 더 일하는 것. (+1공수)

철야는 말 그대로 밤을 넘기는거였는데요.(주로 새벽 3-4시쯤 끝났습니다. +2~4공수)

 

원청과 계약한 공사기간이 얼마 안남은 하도급 업체의 간절함은, 이렇게나 달콤했습니다.

 

하고자 하는 사람은 60공수까지도 가능했던 구조입니다.

옆 철야 전문팀 어떤분은 70공수넘게 했다는 전설도 있어요. (가능한가? 하루 30시간을 일했다는 전설도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주 52시간 제한이 일용직에도 포함되어 못해요. 당시에만 가능했던 구조)

 

저도 최대 59공수인가 찍었던 기억이 있네요. 일주일에 110시간정도 일했던 것 같습니다

 

월급날의 나

(자본주의 만세)

 

당시 인생최대업적 = 학생 이던 제게 주체할 수 없던 큰 돈이었습니다. 추후 제 사리사욕과 여행, 유학비용 등등에 큰 이바지가 되었습죠.

 

(이때보다 더 많이 벌 날이 또 왔으면 좋겠습니다.)

 

 

 

 

 

 

2-3) 그래서 용접은 언제 하나요?

용접이야기 적기로 한건데, 아직 용접은 시작도 안했네요. 주절주절...

 

무튼 용접은 마곡 사이언스 파크에서 배웠습니다.

 

거기서 주로 4인 1조로 일했습니다.

1) 탱커 배관공 형님(이라고 하기엔 환갑이 넘으셨었지만, 이상하게 거기선 모두가 형님이라고 불렀습니다.)

2) 딜러 용접사 친구(중학교 친구)
3) 잡일 하라면 하는 배관조공 (나)

4) 힐러 화기감시자 이모 (주로 용접작업시 나오는 불똥이 엄한데에 붙지는 않는지, 화재방지 대책은 잘 세웠는지 감시하는 이모님)

 

바야흐로 턴제 RPG처럼 넷이서 공사현장 이곳저곳 다녔는데요. 처음 배우는 사람에겐 무엇이든 재미가 있곤 하죠.

 

저는 배관 오차없이 자르기, 배관 앵글을 N도로 자를때 필요한 입체도면 그려보기 (생각보다 많이 어려웠습니다.)등에 빠져있었습니다.

 

특히 제일 좋았던건 역시 불꽃! 불꽃이었습니다. 소비에트의, 낫과 망치, 그리고 불꽃! 

불꽃은 예술이다.

 

배관공 형님과도 친해지고, 용접공은 중학교 친구고. 정말 용접을 배우기엔 최적의 환경이었습니다.

처음 한달정도는 매일 점심시간마다 남는시간에 용접을 배웠습니다. 

참 복받은 환경이었지요.

 

"점심시간에 친구와 용접연습 하는 나" 

 

배관을 하다보면 어딘가 재활용하기에도 힘든 짜투리 배관(매우 짧음)이 나오는데요, 이걸 재료삼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어느순간부터는 혼자 현장 가접(가용접)도 해보고, 두달정도 지난뒤엔 혼자 이것저것 붙여보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러다 삼성 건설현장에서 저희 팀에 제안이 왔고, 이 현장에서는 팀 내 준 용접공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고수 용접공은 공수당 단가가 20만원이 넘었던 것 같은데요. 저는 17만원이었습니다. 다시 생각해도 전 인복빼면 시체인 것 같습니다. 

 

 

 

 

아직도 쓰자면 쓸게 많이 남았지만, 배도 고파지고 당도 떨어지니 대충 사진만 남기고 가겠습니다.

용접이야기보단 도입부에서 에너지를 다 쓴 기분이네요. 뭐 원하시면 2편도 작성하겠습니다.

고마워요. X상형님, 친구야! 낄낄

 

 

3.  부록. 공사현장 사진전

앗싸,  앗차, 불이야!

배관공 반장님과, 중학교 용접공 친구와 함께 점심먹으러 가는데 그물막에 불이 붙은걸 발견했습니다.

 

역시나 현명하시던 배관공 반장님은 기꺼워하시며 제게 촬영을 명했고, 이 사진으로 인해 저희 팀은 그달의 안전공로를 인정 받아 LG 제습기(당시 단가 60만원)를 모두가 보는 앞에서 한대씩 받았습니다.

 

역시 어른말 들으면 떡하나 나온다는 말은 참으로 틀린말이 아닙니다.

 

 

받아라, 알라의 마술봉

 

 

점심시간에 짜투리 배관을 가지고 용접하며 만들었던 바주카포(참고로 모형)입니다. 참으로 저는 ASK맨입니다.

 

친구, 방장님이랑 아무 생각없이 낄낄 웃었던게 머리속을 스치네요.

 

지금 다시봐도 재밌게 걱정없이 놀았습니다.

 

(오해하실까바 말씀드리면 쉬는시간이었나, 점심시간이었습니다.)

 

 

 

 

 

"I am the King of the world"

 

 

타이타닉 디카프리오? 게 섯거라. 

 

LG 사이언스파크였나, 아마 철야작업하고 새벽에 친구가 찍어줬던 사진 같습니다.철야공수맛있어

 

저기 바로 옆에 크레인이 있었는데. 공사현장을 하면서 꼭 한번쯤은 올라가보고 싶었는데요.

 

아쉽게도 이 낭만은 현장을 떠날때까지 실현 못했습니다. 당연하게도, 아무나 못올라가더라구요. 휴하하.

 

 

 

 

아이 이뻐 반도체 공장

 

당시 정말 거대하다고 생각했던 삼성 고덕 공장입니다. 뭔가 한 동당 조단위로 공사비가 들어갔다고 들었어요.

 

이렇게 보면 체감이 안되는데, 정말 컸어요. 층고도 높고.. 언제 또 저기 갈일은 없겠지?

 

 

어이 휴씨 흰소리 그만하고 일이나 해

 

 

어쩌다보니 삼성현장에선 고등학교 친구 꼬셔서 같이 했습니다.

 

당시 그친구도 컴공과 다니고 있었는데, 제가 급전 필요하냐고 은밀하게 접근했습니다.

 

그 친구는 현재 케이뱅크에서 개발자하고있는데, 간혹가다 만나면 저때 현장이야기만 족히 한시간은 하는 것 같아요.

 

 

 

 

예전 사진을 찾다보니까 추억도 많이 떠올라서 너무 좋네요. 또 벌써 8년전의 일이라는 것도 생소하고 신기하구요.

 

덕분에 예전의 그느낌도 돌아보고, 나름 과거에 낭만있게 살았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되네요.

 

여러모로 좋은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다음에는 더 재미나고 유익한 주제로 찾아뵙겠습니다. (흠 뭐할까요..?)

 

이상 설무빈 부장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