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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의 삶

백도 황도지사

by 아서킴 2024. 4. 12.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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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사는 얘기를 쓰고 싶지만, 갈길이 요원하다.


 

가장 최근에 찍은 고양이 사진이다.

볼비의 눕방

 

 

현관문을 열자 고양이가 튀어나와 복도에서 뒹군다.

고양이가 비상계단으로 나가지 않도록 현관문을 열기 전에 비상계단 문을 꼭 확인해야 한다.

벽지를 뜯은 건 앤디가 아니다.

 

복도에 뛰어나갔다가 다시 들어와 복도를 바라보는 앤디. 벽지는 포기했다.

 


집사의 삶. 나는 왜 집사가 되었을까. 때는 2011년, 동거인 혈육이 출가외인이 되고, 집에 홀로 남게 된 아서는 신이 나서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한다.

 

한 친구가 이렇게 말한다. "이 집은 고양이만 있으면 완벽하다."

 

얼마 뒤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고양이를 키워보지 않겠니?"


비집사 집단에서 고양이에 대해 잘못 통용되고 있는 정보 중 하나는 [고양이는 혼자서도 잘 지낸다]이다. 그렇지 않다. 고양이는 동체 시력이 매우 좋다. 움직이는 무언가는 고양이에게 엄청난 자극이다. 고양이에게는 움직이는 존재가 필요하다. 당신에게 쇼츠가 필요하듯이. 고양이 한 마리와 같이 산다면, 집사가 집에서 계속 움직여주면 된다. 그럴 수 없다면 무엇이든 움직이는 존재를 하나 더 들여야 한다. 그래서 고양이를 하나 더 들였다.


 

 

 

집에 가서 현관문을 열면 고양이가 복도로 뛰어나온다. 앤디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걸 매우 무서워하면서도 보고 싶어한다. <파묘>를 보러가는 인간과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고양이는 신나서 복도를 뒹군다. 일종의 영역표시라고 생각한다.

 

마스크를 쓰고, 삽을 들고 화장실을 치운다. 고양이는 여전히 복도에서 뒹굴고 있다. 화장실은 두 개다. 감자와 맛동산이 든 봉투를 잘 묶어서 쓰레기통에 넣는다. 마스크를 벗고 손을 씻는다. 고양이는 집에 들어와 있다. 현관문을 닫는다.

 

그러면 이제 앤디가 나를 보며 야옹야옹 소리를 지른다. 독일어로 집사를 뜻하는 단어를 번역하면 '캔따개'라고 한다. 캔을 따서 그릇에 담아 주고, 아침에 먹은 그릇을 개수대에 넣는다.

 

고양이들이 밥을 먹는 동안, 옷을 갈아입거나 집안 정리를 한다. 할 일을 마치고 어딘가에 앉으면 볼비는 만져달라고 나를 쳐다보고, 앤디는 다리 위로 올라온다. 저도 이제 좀 쉬거나 제가 해야 할 일을 하면 안 될까요? 라고 말하고 싶지만 고양이한테는 알빠다.

 

볼비는 계속 쓰다듬어주는 스킨십을 좋아하고, 가만히 안기거나 무릎 위에 올라와 있는 건 좋아하지 않다. 앤디는 팔베개를 하고 그릉그릉 거리는 걸 좋아한다. 침대에 누우면 볼비는 약간 떨어져서 자리를 잡고, 앤디는 내 옆에 바짝 붙는다. 누워 있다가 스타일러가 다 돌아가고 나면 일어나서 스타일러 문을 연다. 앤디와 볼비 둘 다 스타일러 안으로 쏙 들어가서 자리를 잡는다. 가끔씩 자리싸움을 하기도 한다. 방금 끝난 스타일러는 따뜻하니까. 나보다 따뜻하니까. 그러다 스타일러가 식은 새벽엔 다시 나를 찾는다.

 

아침에 일어나면 앤디는 내 옆에 붙어 있고, 볼비는 살짝 떨어져 있다. 볼비는 내가 정신이 들면 아침밥을 줄 것을 기대한다. 가끔씩 다시 잠들어 늦게 일어나는 날엔 실망하는 것 같은 기운이 느껴진다. 실눈을 뜨고 볼비를 보고 있으면 '이 자식 일어날 것 같은데 왜 안 일어나지?' 같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아침밥은 보통 볼비만 먹는다. 앤디는 그냥 잔다. 아침밥은 몇 입 먹고 만다. 아침밥은 볼비 취향, 저녁밥은 앤디 취향으로 주고 있다. 앤디는 아침에 일어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는데 일어났다가도 내가 출근할 무렵에는 이미 어딘가에 들어가 자고 있다. 볼비는 계속 깨어있다. 아마 내가 나가고 나면 자기 시작할 것이다. 볼비는 아직 청춘이라 아침잠이 많지는 않다. 나도 나가고 앤디도 나가고 나면 하릴없이 잠에 드는 것이다. 주말에 가끔 종일 집에 있다보면 볼비는 보통 점심 후에 잠이 든다. 앤디는 으르신이라 좀 더 잠이 많다.

 

하루에 고양이와 함께 하는 시간은 길지 않다. 좀 더 길면 좋겠지만 어쩌겠는가, 그것이 너와 내가 맺은 관계인 것을. 그렇다고 미안하지 않은 건 아니다. 긴 시간 함께할 수 없음은 죄를 쌓는 기분이다. 그럼에도 나를 좋아해주어서 그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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